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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2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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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목 : 가톨릭대 김재호 명예교수를 찾아서

[원로탐방]
“백내장·각막교정 수술 선진화에 기여”
가톨릭대 김재호 명예교수를 찾아서


백내장과 각막교정, 인공수정체 발전에 기여해온 가톨릭의대 김재호 명예교수(명동성모안과 원장)를 최근 명동에서 만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알아봤다. “백내장 시술에 대한 수가하락과 시력교정수술 마구잡이 덤핑으로 안과가 생존권을 걱정해야하는 상황까지 왔다”면서 “의료윤리를 자율적으로 지켜 안과위상을 높여야 할 것”이라며 걱정이 많다.


선산(鮮山) 김재호(金在浩) 교수는 지난해 4월 미국 백내장굴절수술학회(ASCRS)에서 동양인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상(Honored Guest Awards)’을 수상하기 위해 부부동반 여행을 다녀온 후 명동성모안과에서 진료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젊은 시절 밤샘 시술을 도맡아 하면서 백내장 환자에게 인공수정체를 삽입수술을 했으며 엑시머레이저 보급 등 국제적으로 대가 반열에 올라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1936년 황해도 수안군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60년에 1회로 졸업했다. 이듬해 성모병원 최초의 안과 레지던트가 되었으며 1966년 성모병원에 임상강사로 발령받아 성바오로병원 안과 초대 과장, 수원 빈센트병원 안과, 이비인후과 초대 과장을 역임했다. 가톨릭의대 부속병원 안과 신설에 기여하기도 했다.


1970년에 미국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안과 윌머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75년에는 일본의 도쿄대학 의학부 안과 방문교수로 연구를 했다. 귀국 후 수술용 현미경 사용으로 안과계에서 미세수술을 시도했다. 안과 선진화를 위해 주도적으로 세계적인 석학들을 국내에 초청했다. 1978년에는 시대를 앞선 안목으로 인공수정체(IOL) 삽입술을 시작하여 1988년까지 5,000례를 시행했고 1985년에는 국내 최초로 백내장 통원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점탄물질(Healon)을 소개하여 수술 부작용을 줄였다. 당시 인공수정체 삽입은 6mm를 절개했었지만 이제는 무출혈 무봉합 무손상까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1980년에는 하버드대 Dohlman 교수 초청과 함께 한국 최초의 수입 안구 각막으로 각막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1980년 Cardona형 인공각막이식수술의 최초 성공을 알렸고, 안은행 활용과 각막이식수술에 기여했다. 1982년 전방 방사상 각막절개술을 한국 최초로 시술하여 보급했고, 1991년부터는 엑시머레이저 근시교정수술을 대학병원 최초로 도입했으며, 1995년부터는 라식(LASIK)으로 전환하여 신속히 시대에 적응했다. 이를 통해 서울성모병원이 백내장수술, 각막이식수술, 인공각막이식술의 중심 메카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늘 창조적 사고와 새로운 도전으로 선진화에 앞장섰다.


1974년 ‘맹인 흰지팡이’ 보내기 캠페인, 1983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영세민 무료개안수술사업, 1991년 강남성모병원 안은행 설립, 1993년 안과연구재단 설립 등 사회사업도 아낌없이 펼쳤다. 학회에서 1988년 대한안과학회 이사장, 1989년 한국인공수정체 연구회 회장, 1995년 한국외안부연구회 회장, 1996년 한국콘택트렌즈 연구회 회장직을 역임했다.


1980년 서울성모병원의 전신인 강남성모병원 개원과 함께 초대 안과과장 겸 진료부장을 역임, 희생적인 자세로 활동했다. 1986년부터 2년간 강남성모병원 원장직을 맡으며 환자 진료, 연구, 봉사와 함께 병원 위상제고에 힘썼다. 1994년에 의학대학원장을 지내고 2002년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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